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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스웨덴에서 여성을 생각하다 (비움과 채움) 성명: 전북여연 조회: 626 2011-11-01
   
내용
히잡을 쓰고 횡단보도에 서 있는 여성, 까만 선글라스를 끼고 빵 한쪽을 베어 물며 걷는 여성, 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달리는 여성, 커다란 마스크를 쓰고, 조그만 가스통을 끌며 도로 바닥의 풀을 태우는 아시아 여성, 하루 온종일 시내 한복판에 식당 홍보물을 들고 서 있는 멕시코 남성, 유모차를 끌며 커피를 마시는 유럽 남성, 전동휠체어를 타고 마트에서 장을 보는 장애여성, 대뜸 어디서 왔냐며 욕부터 해대는 아프리카 남성, 너무도 다양한 색깔을 가진 여성과 남성이 그 곳에 있었다.

핀란드 헬싱키 반타공항 도착해 덴마크 코펜하겐, 그리고 목적지인 스웨덴까지 꼬박 하루하고도 반나절에 걸친 이동의 피로는 8시간의 시차가 순간 베어 먹어버린 듯 사라졌지만, 스웨덴 언어의 생경함과 발음의 요란함 때문이었을까 ? 이상한 나라의 흰 토끼를 놓친 맹한 엘리스가 되어 헤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헤맴 속에서 나와 같고도 전혀 다른 여성들을 만났다.

총부리에 꽃을 단 여성, Women of Africa 'Maasai'
스웨덴 헬싱보리에 있는 둔커스 문화센타를 방문하던 날, 우연하게도 당일 스웨덴 여성작가들의 다양한 설치미술품이 전시되고 있었다. 가슴을 드러낸 여성들이 든 총부리엔 붉은 꽃, 노란 꽃을 매달아 놓은 채 서로의 몸이 평화가 되어 춤추고 있었고, 여성들 스스로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 죽음의 총알 대신 생명의 꽃을 매달아 놓은 듯 했다.
얼굴색과 사는 곳은 달라도 여성은 하나였다 ! 마사이 부족 여성들의 일상을 담은 사진 전시회를 통해 여행객과 문화센타 방문자들에게 엽서와 포스터를 판매하고 그 기금으로 마사이 부족의 어린 소녀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수업료를 모금하고 있었다. 마사이 여성 중 89%가 할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긴 하지만, 세계 곳곳의 여성들은 여성이기 때문에 같이 분노하고 슬퍼하며 그것들을 이렇게 공유하며 행동하고 있었다.

웁살라 대학의 최초의 여대생, 그리고 여성물리학자들
웁살라 대학은 스웨덴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으로 한 도시가 거의 대학을 중심으로 발달되어 있는데, 대학을 유심히 관찰하다 아주 오래전 최초의 여대생과 여성물리학자들을 기록으로 만날 수 있었다. 보통은 남성학자들의 업적과 유품들만이 있을법한 거대한 박물관에 당시 여학생회의 설립부터 당대의 여성 물리학자까지 꼼꼼하게 전시 기록되어 있는 자체가 보기만 해도 경이로웠다. 지금 스웨덴은 성 평등한 사회로 알려져 있지만 아주 오래전엔 여성들이 대학을 다니는 것 자체가 허락되지 않아 최초로 여성이 대학을 다녔던 시기가 1872년, 전체 1544명의 남학생 가운데 딱 한명의 여성이 유일하였다고 한다.

또한 자살을 선택하면서 까지 자신의 죽음으로 남성들처럼 여성도 물리학자가 될 수 있다는 비명 섞인 여성 물리학자의 가슴 아픈 스토리도 존재했다. 여성은 결국 자신의 생명을 내걸거나, 빼앗기면서 여성임을 확인해야 하는 건가 ? 그렇다면 140여년이 지난 지금도 여성이 내걸어야 하는 목숨이, 혹은 빼앗겨야 하는 생명이 아직도 있어야 하는 건가 싶다.

스웨덴 말뫼 여성단체, 여성 활동가들
한국으로 치자면 가정폭력 상담소와 쉼터를 운영하는 'KVINNOJOUREN', 그리고 이주여성들을 지원하는 "Internationella Kvinnoföreningen i Malmö" 잔뜩 긴장을 했지만, 그들의 모습에서 난 나를 보았고 그래서 실실 웃어댔다. 검은 스웨터 차림의 키가 무지 컸던 Silvia, 연륜 있어 보이는 모습 속에 우리에 대한 경계의 빛이 역력했다가 스웨덴어로 대화의 언어가 바뀌자마자 동서 장벽이 허물어지듯 술술술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여연 로고에 무척이나 관심을 보이며 이제 여성운동은 남성과 함께 하는 운동임을 이야기 해줬던 그녀는 가정폭력을 당한 당사자와 가해자뿐만 아니라 그들의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매우 각별했다. 2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곳도 활동가들이 가정폭력 가해자로부터의 협박 속에 외부로 유출되는 사진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갈수록 사람들의 기부가 줄어들고, 스웨덴 안에서도 줄어들지 않은 가정폭력에 대한 걱정들이 나의 일상처럼 느껴져 왔다.
그러다 정말로 난 ........언니, 힘들구나? 라고 말할 뻔 했다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난 스웨덴어를 하나도 모른다는 거...

한국인 이주여성, 미영언니
정말 내 여행의 백미라면 이 언니를 만난 게 아닐까 싶다. 고향은 전라북도 김제, 스웨덴으로 이주한지 20여년 지금은 간호사로 일하면서 예쁜 두 딸들과 살고 있고, 곧 멋진 남자친구와의 결혼을 앞두고 있다.
“고향을 감미롭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허약한 미숙아다. 모든 곳을 고향이라 여기는 사람은 이미 상당한 정신의 소유자다. 하지만 전 세계를 타향이라고 느끼는 사람이야말로 완벽한 인간이다”라고 성 빅토르 후고가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난 이 분의 말처럼 이방인이 되어 완벽한 인간이 되기는 글러먹었나 보다.
검은머리와 적당한 키, 그리고 낯익은 한국말을 하는 언니를 만나면서 타향에서 같은 피부색과 같은 언어를 쓴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말을 말아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해 본다. 게다가 무엇보다 그녀와의 대화를 통해 삶의 긍정은 생각지도 못한 변화를 가져오고 그 변화는 사람을 제법 멋지게 자라게 한다는 사실을 알기까지 했으니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있을 수 있을까 ! 나라면 쉽게 포기했을법한 것들을 두 아이 까지 키우며 즐거운 미소를 머금고 살아온 그녀의 지난 과거와 현재의 일상을 듣고, 보고 있노라면 금세 내 얼굴은 발갛게 달아오르곤 했었다. 이제 곧 그녀에게 도착할 이문세 CD가 그녀가 매일 매일 맞이할 일상에 놓여 있길 고대해 본다.

나, 노현정
유럽의 황홀할 것 같은 푸르른 날씨는 아주 잠깐, 차가운 바람을 더 많이 느끼고 왔던 나는 내내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는 폴 발레리의 시 구절을 매일 매일 읊조리며 살았었다. 하루에도 여러 번 계절이 바뀌는 이곳의 날씨는 '인생은 끝까지 살아봐야 해' 라고 알려주기라도 하려는 듯 어두운 구름과 차가운 바람 그리고 따뜻한 햇살과 파란 하늘이 늘 공존하는 곳이었다.
이곳 전주, 여전히 바람이 불고, 햇볕이 쏟아지고, 또 다시 비가와도 내 앞에 살아가야 할 삶이 여전히 놓여져 있다. 오른쪽 무릎과 발목에서 삐그덕 삐그덕 소리가 날 정도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다시 이곳에 오니 모든 게 나로 귀결하고 있었다. 나란 사람, 나란 여자, 나란 딸, 나와 함께 붙여지고 있는 다양한 모든 이름위에 나는 어떤 모습으로 관계 맺고 있는지를 말이다. 물론 특별한 정답이나 괜찮은 대답을 찾고자 하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은 나로 종착되고 말았을…….이미 알고 있었던 것들을 천천히 확인하고, 되새김하기 위해 이 여행을 떠났던거였으므로 ...
한반도에서 스칸디나비아반도까지의 거리는 2만㎞. 너무 먼 곳에서도 변화를 꿈꾸고만 있는 게으름뱅이인 나를, 대책 없이 상상만 해대는 허풍쟁이인 나를, 주저주저하고 있는 소심쟁이인 나를, 나이를 먹을 수록 삶의 행간이 멀어지는 나를, 길치에 허당인 나와 마주하였다. 여전히 나는 나로 인해 아우성친다. <끝>

위 글은 지난 8월 8일 부터 총 40여일간 비움과 채움 프로젝트(아름다운재단)를 다녀와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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